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몹쓸 연애 / 이은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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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107회 작성일 21-08-09 22:40

본문

몹쓸 연애

 

 이은유


 

무작정 달려가고 싶은 이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무 때나 그를 향해 마구 마구 치달았으면 좋겠다

책을 읽다가 책장을 덮어 팽개쳐버리거나

꾸역꾸역 밥을 먹다가 밥숟가락을 내던지고

느닷없이 차를 몰고 가거나 밤기차를 타고 가

자고 있는 그를 불러내 대책 없이 매달리고 싶다

그러나 아무런 준비 없이 나를 맞이한

부스스한 머리 모양을 하고

집에서 입고 있던 허름한 옷을 그대로 입고 나와

눈곱을 떼어내려고 눈을 비비대는 그를 보고 실망도 하겠지

내 마음엔 얼마나 많은 허공이 둥둥 떠다니는지 참혹하게 느끼겠지

한밤중이나 새벽녘에 전화를 받던

갈라진 목소리가 떠올라 몸서리도 쳐지겠지

피다 만 담배를 구겨 꺼버리듯 미련 없이 돌아서 가겠지만

그는 다만 나에게 아무것도 아니기를

열정이 바닥나 맨발로 그가 찾아온대도 나는 그저 시큰둥하겠지

그렇더라도

설령 그렇다 할지라도

금기의 마약 같은 허밍의 불씨를 지필 수 있다면

맑은 날에도 바람에서 나는 비의 냄새를 맡을 수 있겠지

불현듯,

  

 

이은유 시집 태양의 애인(시인동네, 2015)




leeeunyoo-140.jpg


1968년 경기도 안성출생

1990년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단국대 대학원 문예창작과 졸업
1996년 
현대시로 등단

『이른 아침 사과는 발작을 일으킨다』 『태양의 애인』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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