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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 권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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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239회 작성일 21-07-10 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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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권순자

 

 

저녁이 되면 낯선 마을 처마 밑을 맴돌지요

달빛이 휘영청 길을 열어주지만

길도 추워서 바람이 머물지 않지요

한 몸 뉠 곳 없는 고양이

주뼛주뼛 처마 밑을 서성거리지요

흙에 묻힌 역사는 다시 살아 되풀이 되는데

창백한 꽃들이 달빛에 파랗게 질려 떨고 있는데

어둠이 왜 자꾸 짙어만 가는지

꽃들의 잔기침 소리, 목울대를 흔드는 소리 어느 새

길고 가늘게 뻗어 밤안개로 피고 있어요

안개끼리 기침하고 있어요

뿌연 고통의 뿌리들이 사방에 퍼지고 있어요

제 가슴 두드리는 넝쿨손, 허우적허우적

반짝이는 푸른빛들이 날카롭게 허공을 조각내는 한밤

앞서간 순례자들이 뼈를 이어

하늘로 다리 놓고 있어요 

 

권순자 시집 순례자(시산맥, 2014)

 


kwonsunja.jpg

 

 1958년 경상북도 경주출생

1986년 포항문학에 사루비아」 외 2편으로 작품 활동 시작

2003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으로 우목횟집』 『검은 늪』 『낭만적인 악수

붉은 꽃에 대한 명상』 『순례자』『청춘 고래』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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