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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치의 꿈 / 남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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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68회 작성일 21-01-28 10:20

본문

멸치의 꿈

 

   남상진

 

 

이 바닥에서 나는

잔챙이라 불린다

한 때는

반짝이는 물결무늬 옷을 해 입고

힘차게 파도를 넘는 꿈을 꾸기도 했지만

덩치가 산 만 한 고래를 보고 난 뒤부터 이내 기가 죽었다

그나마

고만고만한 동류들이 있어 견디고 있는 중이다

 

물속 세상에서

거센 해류를 거슬러 오르는 것은

살아있음을 증명해 내는 일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온몸의 근육을 키워

뼈대 있는 존재로 역사에 기록될 수 있기를

 

그 한 가닥 희망을 안고

물속에서

스스로 소실점이 되는 생

 

아무리 발버둥 쳐도 끝끝내

고래가 되지 못하는 내가

살아남는 법은

속으로 스며들어

깊은 맛을 내는 종족으로

이름을 얻는 것이다

 

계간 시산맥2020년 겨울호  


 


 

1967년 경북 상주 출생

2014년 애지로 등단

시집으로 현관문은 블랙홀이다

시흥문학상, 민들레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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