눕듯이 서듯이 자작자작 / 천수호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01회 작성일 16-10-27 09:04본문
눕듯이 서듯이 자작자작
천수호
봄 자작나무가 하늘로 하늘로
어린 청개구리들을 토해 낼 때
철없는 청개구리들이 우주 밖으로 뛰어내릴까 봐
막다른 골목길을 선물로 내려 준 것처럼
다투고 있던 당신과 나도 그 골짜기에 멈춰 섰다
한 실랑이가 다른 실랑이에 기대어 사르락거릴 때
당신은 그 하얀 길에만 취해 앞서가기 시작한다
모서리를 숨겨 온 잎들이
당신 앞의 산을 둥글게 만들어
산의 광기와 골짜기의 맹렬을 다 덮었다고 생각할 때
애초에 모두 길이었던 자작과 자작 사이
멈추는 발자국소리처럼 당신이 자주 턱 턱 걸린다
먼 발 아래 꽈리처럼 부푼 비닐하우스가 없었다면
저 밭뙈기의 냉증을 이해하지 못했을 터
앞서가는 당신 뒷등이 바람에 불룩 부풀어서
당신의 냉증은 그대로 내 몸속의 꽈리가 된다
냉증의 땅이 꽈리를 불어서
누워 있는 장작과 장작 사이
서 있는 자작과 자작 사이에
눕듯이 서듯이 푸른 한 잎 또 터져 올라온다
아직도 자작자작 속을 태우는 중이다
자작 숲에선 뛰어내릴 수 없는 서로의 길이 선물이다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명지대 박사과정 수료
2003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