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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몰로부터 / 박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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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95회 작성일 16-11-17 08:56

본문

 

일몰로부터

 

박형권


잠깐 피었다가 사그라지는 바다채송화처럼

나도 너희들 축제에 얼굴 비추었다가

살며시 비켜줄 거야

아무 한 것 없이 나는 어느새 서산에 걸려있고

하늘이 붉자 한다고 덩달아 붉어

살면서 누구 한 사람 오래 잡아두지 못하고

그 또한 나를 끌어당기지 않았지

아이들은 학교운동장에서 늦도록 놀다가

무리 지어 마을로 돌어오고

마을 방파제로 머구리배 들어오면

해삼과 멍게가 처음 시작한 심해에까지

노을이 들 거야

아침에 일어나 봄볕에 세수하고

쌈상추 몇 뿌리 뽑아 흙 털어내는 사이

벌써 가을이야

흰 머리는 가을하고 친하다고 했었지

노루귀 한 쪽 쫑긋거리는

그 간극만큼만 시간이 남아있어서 저녁은 저렇게 뜨거운가

점점 잠이 없어 하루를 뜬눈으로 보내는 것은

오래 자기 위한 준비이겠거니

아들아

곧 어둠이 내려 마을을 안심시킬 거야

그때 울어도 늦지 않다 지금은 눈부셔야 할 때

 

 


  phg.jpg

 

 

1961년 부산 출생
경남대학교 사학과 졸업
2006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우두커니』 장편동화 『돼지 오월이』『웃음공장』『도축사 수첩』 등

제17회 수주문학상, 제2회 애지문학회 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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