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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린다 / 진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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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772회 작성일 19-08-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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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울린다

 

   진은영

 

  

너에게는 피에 젖은 오후가 어울린다
죽은 나무 트럼펫이
바람에 황금빛 소음을 불어댄다

너에게는 희망이 어울린다
식초에 담가둔 흰 달걀처럼 부서지는 희망이

너에게는 2월이 잘 어울린다
하루나 이틀쯤 모자라는 슬픔이

너에게는 토요일이 잘 어울린다
부서진 벤치에 앉아 누군가 내내 기다리던

너에게는 촛불 앞에서 흔들리는 흰 얼굴이 어울린다
어둠과 빛을 아는 인어의 얼굴이


나는 조용한 개들과 잠든 깃털,
새벽의 술집에서 잃어버린 시구를 찾고 있다. 너에게 어울리는

너에게는 내가 잘 어울린다
우리는 손을 잡고 어둠을 헤엄치고 빛 속을 걷는다

네 손에는 끈적거리는 달콤한 망고들
네 영혼에는 망각을 자르는 가위들이 솟아나는 저녁이 어울린다

너에게는 어린 시절의 비밀이
나에게는 빈 새장이 잘 어울린다
피에 젖은 오후의 하늘로 날아오르는 새들이


  - 월간 新東亞20188월호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2000년 《문학과사회》봄호로 등단
시집으로『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훔쳐가는 노래』
그 밖에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니체, 영원회귀로와 차이의 철학』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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