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하다 / 이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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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하다
이 령
난 말의 회랑에서 뼈아프게 사기 치는 책사다
바람벽에 기댄 무전취식 속수무책 말의 어성꾼이다
집요할수록 깊어지는 복화술의 늪에 빠진 허무맹랑한 방랑자다
자 지금부터 난 시인是認하자
내가 아는 거짓의 팔 할은 진지모드
그러므로 내가 아는 시의 팔 할은 거짓말
그러나 내가 아는 시인의 일할쯤은
거짓말로 참 말하는* 언어의 술사들
그러니 난 시인詩人한다
관중을 의식하지 않기에 원천무죄지만
간혹 뜰에 핀 장미에겐 미안하고
해와 달 따위가 따라붙어 민망하다
날마다 실패하는 자가 시인** 이라는 것이 원죄이며
사기를 시기하고 사랑하고 책망하다 결국 동경하는 것이 여죄다
사기꾼의 표정은 말의 바깥에 있지 않다
그러니 詩人의 是認은 속속들이 참에 가깝다
* 장콕토
** 이성복
―이령 시집, 『시인하다』 (시산맥사, 2018)

2013년 《시사사》로 등단
시집 『시인하다』 『삼국유사 대서사시 사랑 편』
스토리텔링집 『대왕소나무 발화법-금강소』, 한중작가공동시집 『망각을 거부하며』
기타 저서로 『Beautiful in Gyeongju-문두루비법을 찾아서』 등
2022년 시산맥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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