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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옹 / 이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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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623회 작성일 18-01-11 10:09

본문

포옹

 

  이기성

 

 

비가 수천의 하얀 팔을 뻗어

너를 안는다

흰 도화지 같은 공중에

너의 입을 예쁘게 그려줄게

주르륵 녹아 흐르는 입을 다시 그려줄게

똑같은 노래를 반복하는 파란 입술 그려줄게

 

비의 하얀 팔들은 어디로 가서

낯선 얼굴 어루만지는지, 어디로 날아가

검고 차가운 목덜미를 감싸며 흩어지는지

 

아직 해야 할 이야기가 있고

아직 따뜻하고 고요한 뺨이 있다는 듯

주황색 포클레인이 우뚝 멈춰 있다

부서진 옥상 위

아이의 슬리퍼가 고요히 젖고 있다

 

비의 팔들은 모두 어디로 날아가는지

퍼붓는 빗속에서 아이는

하염없이 입을 벌리고 걸어간다

 

- 이기성 시집 채식주의자의 식탁(2015, 문학과지성사)에서

 

 

 

1966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88문학과사회등단

시집으로불쑥 내민 손』 『타일의 모든 것

평론집 우리, 유쾌한 사전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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