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린 날의 귀가 / 조 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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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린 날의 귀가
조 은
친구가 내 집에다
어둠을 벗어 두고 갔다
점등된 등불처럼
왔던 곳으로 되돌아갔다
어둠이 따라붙지 못한 몸이
가뿐히 언덕을 넘어갔다
사는 게 지옥이었다던
그녀의 어둠이 내 눈앞에서
뒤척인다 몸을 일으킨다
긴 팔을 활짝 편다
어둠이 두 팔로 나를 안는다
나는 몸에 닿는 어둠의
갈비뼈를 느낀다
어둠의 심장은 늑골 아래서
내 몸이 오그라들도록
힘차게 뛴다
나는 어둠과 자웅동체처럼 붙어
어딘가를 걷는 그녀의
발자국 소리를 듣는다
경쾌하던 그녀의 발걸음이 느려지고
표정이 바뀐다
나도 한 숨 한 숨 힘겹고
눈앞이 흐려진다
—시 전문지《포에트리》2017년 창간호
1960년 안동 출생.
1988년 《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땅은 주검을 호락호락 받아주지 않는다』『무덤을 맴도는 이유』
『따뜻한 흙』『생의 빛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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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童心初박찬일님의 댓글

어둠->그늘진 삶의 기억을 말함이겠지요. 이것이 화자의 몸에 붙었다가 마침내는 화자가 되어버린 숨찬 삶의 기억.
미완으로 남겨둔 대답에서 진행형임을 짐작케하는...
즐감하였습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