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에 등을 기댄다 / 안효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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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에 등을 기댄다
안효희
나무 그림자에 등을 기댄다
기댄 것은 나인가 그림자인가
배우처럼 분칠을 한다
언제나 웃는 얼굴은 슬퍼지는 얼굴을 데리고 산다
움직이는 순간마다 서로를 바라본다
울며 웃으며 끌어안는다
물들지 않는 단풍나무 잎사귀 떨어진다
가본 적 없는 숲에서 날아온 먹그늘나비가 손톱 위에 앉는다
그림자를 끌고 가는 왼쪽 얼굴이
햇빛 드는 오른쪽 얼굴 보며 안도의 한숨을 쉰다
얼굴을 접는다
두 개의 얼굴이 네 개가 되는
귓속의 귀 열리고 입속의 입 겹친다
천천히 느리게 걸어가는 두 발과
가슴 두근거리며 허둥대는 두 발을
누가 묶어 놓았나
사거리에 세워진 바람인형이 다시 넘어진다 다시 일어선다
밤이면 의문부호 같은 비가 지붕과 지붕을 덮어
한 명, 두 명, 세 명의 내 모습이 잠에서 깬다
얼굴과 얼굴 사이
아무도 모르게 잠시 파랗게 물드는 것은
또 다른 그림자를 가진 여러 겹의 얇은 옷
아침은 다시 시작되고 그 절반은 붉거나 푸를 것이다
- 《시와사상》 2017년 봄호

1999년 《시와 사상》으로 등단
시집 『꽃잎 같은 새벽 네 시』『서른여섯 가지 생각』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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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백이님의 댓글

좋은 글
잘봤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