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시인 / 함명춘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무명시인 / 함명춘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965회 작성일 21-12-23 19:34

본문

무명시인

함명춘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
가진 것이라곤 푸른 노트와 몇 자루의 연필밖엔 없었던
난 그가 연필을 내려놓은 것을 본 적이 없다
아니, 한 두어 번 부러진 연필을 깎을 때였을까
그가 연필을 들고 있을 때만큼은 언제나
바나나 같은 향기가 손에 와 잡히곤 하였다
그는 마을 어귀 가장 낮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마당엔 잎이 무성한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다
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적어넣었다, 그러면
나비와 새 들이 하늘에서 날아와 읽고 돌아가곤 했다
그런 그를 사람들은 시인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가 어디에서 왔는지 이름은 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
인기척이라곤 낙엽 같은 노트를 찢어대는 소리일 뿐
아니, 밤보다 깊은 울음소릴 몇 번 들은 적이 있었을까
난 그의 글을 읽어본 적이 없다 하기야
나무와 새와 바람과 별 들이 그의 유일한 독자였으니
세상을 위해 쓴 게 아니라 세상을 버리기 위해 쓴 시처럼
난 그가 집 밖을 나온 것을 본 적이 없다
잠자는 것을 본 적이 없다 먹는 것도 본 적이 없다
밤낮없이 그는 푸른 노트에 무언가를 자꾸 적어넣었다
더이상 쓸 수 없을 만큼 연필심이 다 닳았을 때
담벼락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몇 줄의 시를 새겨넣고
그는 갔다 눈도 추운 듯 호호 손을 불며 내리는 어느 겨울
무명시인
끝내 그의 마지막 시는 세상 사람들을 감동시키지 못했다
그 몇 줄의 시를 읽을 수 있는 것들만 주위를 맴돌았다
어떤 날은 바람과 구름이 한참을 읽다가 무릎을 치며 갔다
누군가는 그 글이 그가 이 세상에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발표한 시라 하고
또 누군가는 그건 글도 시도 아니라고 했지만
더이상 아무도 귀에 담지 않았다
그가 떠난 집 마당, 한 그루 나무만 서 있을 뿐
도무지 읽을 수 없는 몇 줄의 시처럼 세월이 흘러갔다, 흘러왔다

—함명춘 시집 『무명시인』 (문학동네, 2015)

 

hammyoungchoon-150.jpg


강원도 춘천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창과 졸업

1991년 <서울신문신춘문예 당선

시집 빛을 찾아 나선 나뭇가지』 『무명 시인』 

제31회 편운문학상 수상 


추천0

댓글목록

함동진님의 댓글

profile_image 함동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눈위에 내리는 여명]

                                          함동진

      보송한 하얀 이불로 세상를 덮은 미명
      온동네 새근새근 꿈꾸는 마을 어귀에
      불그스레 상기된 빛깔로 찾아든 여명 
      창문사이로 빛고운 행복을 들여보낸다.


http://hamdongjin.kll.co.kr/
http://cafe.daum.net/hamdj

Total 3,203건 49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80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7 0 11-27
80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62 0 11-27
80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3 0 11-27
80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01 0 11-29
79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66 0 11-29
79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7 0 11-29
79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2 0 11-30
79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67 0 11-30
79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30 0 11-30
79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1 0 12-02
79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2 0 12-02
79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25 0 12-02
79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52 0 12-05
79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9 0 12-05
78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60 0 12-05
78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3 0 12-07
78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1 0 12-07
78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35 0 12-07
78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52 0 12-08
78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9 0 12-08
78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8 0 12-08
78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42 0 12-09
78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3 0 12-09
78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20 0 12-09
77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84 0 12-13
77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36 0 12-13
77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67 0 12-13
77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16 0 12-18
77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4 0 12-18
77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35 0 12-18
77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84 0 12-20
77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78 0 12-20
77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5 0 12-20
77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7 0 12-22
76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0 0 12-22
76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52 0 12-22
열람중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66 0 12-23
76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40 0 12-23
76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5 0 12-23
76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949 1 12-24
763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699 0 12-26
762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44 1 12-26
761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18 1 12-26
760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3 0 12-27
759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86 0 12-27
758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77 0 12-27
757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22 0 12-28
756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774 0 12-28
755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1003 1 12-28
754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807 1 12-29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