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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밀교 / 권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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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437회 작성일 17-06-20 09:15

본문

나무밀교

 

권영준

 

누군가 내게 보낸 봉인된 엽서들을

손에 쥐고 흔드는 저 나무의 애틋한 눈길은

천상의 우체부를 닮았다

지난 겨우내 썼다 지우고

지웠다 다시 쓴 생명의 시간,

나무는 수도 없이 잎들을 땅에 떨구며

자신을 버리고

한번 버렸던 잎들을 봄마다 다시 주워들어

지나는 이들에게 애타게 손을 흔드는 것이다

그럴 때 세상은 볕에 물들고

빈 나무의 풍요한 밀교를 기억한다

길을 가다가 살펴보면

나무는 한 권의 책이 되어 있다

미처 건네 주지 못한 숱한 사연과 온기들을

둥근 나이테 사이에 두툼하게 끼워 두고

새파란 우체통이 되어 우두커니 서 있다

자물쇠 없는 우체통에서

오래 잠들었던 내 사랑을 흔들어 깨울 때,

몸에서는 짙푸른 잎사귀가 돋아나고

나도 모르게 누군가에게 다가가

불쑥, 초록 손을 내밀어보는 것이다

 

 

2.jpg

1962년 경북 영주 출생

1998현대시등단

시집 박물관을 지나가다』 『불의 폭우가 쏟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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