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한 문장은 죄가 되지 못한다 / 이화은 > 오늘의 시

애매한 문장은 죄가 되지 못한다

  이화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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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죄는 도무지 문장이 되지 않는다

한껏 한 문장을 만들고 나면

주어가 실종되었거나 동사가 지나치게 과격하다

따끔따끔 압정 같은 쉼표가 행마다 행간마다

어지럽게 널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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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뜸이 들지 않은 밥상을

입맛이 까다로운 신에게 바칠 수는 없다

문장은 짧을 수록 좋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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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는 시가 아니다

가끔 소설을 쓰는 이도 있지만

내 신의 취향은 다큐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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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에 목마른 사제가 홀로 지키는 고해소 앞을

오늘도 문장이 되지 못한 죄인들이

고개를 숙이고 지나간다, 홀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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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해소의 불빛을 훔쳐보는 이도 있으나

틀린 문법은 십계명에 들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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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지은과, 죄지은 듯의 차이에 대해

사람들은 크게 따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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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은 시집 『절반의 입술』 (파란, 2021)

경북 경산 출생
1991년 《월간문학》등단

시집으로 『이 시대의 이별법』 『나 없는 내 방에 전화를 건다』

『절정을 복사하다』 『미간』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