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 공장 / 이영주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유리 공장 / 이영주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34회 작성일 17-04-27 14:46

본문

유리 공장

 

이영주

 

 

   너는 늙고 어려운 마음. 나는 아무것도 모르지. 너는 유럽식 모자를 쓰고 서 있다. 어두운 굴뚝 위에서 피어오르는 구름처럼.

 

    너는 먼 곳을 걷다가 얼음 속에 갇힌 적이 있다. 깨끗했고 추웠지. 너는 모자를 고쳐 쓰며 말한다. 그때 나이를 잃었나. 부정(否定)을 잃었나. 끈끈한 어둠도 갇혔지. 죽지 않는 소년이고 싶어서 말이지.

 

    나는 유럽식 찬장에서 너를 보고 있다. 불에 구워졌다가 빠져나오는 딱딱한 얼룩처럼. 무력한 곰팡이처럼.

 

    유리 안에 갇힌 나를 보며 너는 웃는다.

 

    뛰어난 유리 제조공이었네.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도록 불투명한 유리를 끼워놓은 자. 먼 곳을 돌아와 그릇처럼 조용히 시간을 쌓아 놓은 자. 유리 제조공은 말했지. 불순물은 닦아낼수록 깊어진다니 너무 깨끗하게 닦지 마시오. 더께가 쌓이면 유리는 복잡하고 아름다운 무늬를 빚는다고 한다.

 

   너는 모자를 벗으며 유리 안을 본다. 얼음 속에서 죽지 않는 소년을 제조하고 싶었지. 너는 사라지는 표정을 들여다본다.

 

   나는 아무 것도 모르지. 수건으로 유리 찬장을 닦는 어렵고 긴 마음. 매번 실패하는 것은 나이를 가둬서인가 부정을 버려서인가. 무늬로 뒤덮인 불멸의 강화유리가 되고 싶었지.

 

   너는 굴뚝을 향해 걸어간다. 얼음에 갇혀 무엇을 잃었나. 흰 구름, 흰 얼룩, 흰 머리, 흰 이빨...... 너는 희미한 목소리로 중얼거리다 말고 굴뚝 사이로 빠져나간다.

 

   나는 늙은이처럼 천천히 아주 천천히 흰 포자를 퍼뜨린다. 이제 소년은 살아나고 집으로 돌아올 것이고 그렇게 흰 소년은 살아 있기만 할 것인데 이것은 유리의 마음이 될 것인데

 

 - 현대문학2017. 3월호

 

 


127443167860_20100522.jpg

 

1974년 서울 출생
2000년 《문학동네》 등단
시집 『108번 째 사내』 『언니에게』 『차가운 사탕들』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326건 50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87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0 0 06-07
87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21 0 06-05
87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29 0 06-05
87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20 0 06-02
87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78 0 06-02
87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25 0 06-01
87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98 0 06-01
86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15 0 05-31
86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19 0 05-31
86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35 0 05-30
86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06 0 05-30
86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17 0 05-29
86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10 0 05-29
86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95 0 05-26
86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51 0 05-26
86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97 0 05-25
86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9 0 05-25
85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71 0 05-24
85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48 0 05-24
85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59 0 05-23
85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91 0 05-23
85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0 0 05-22
85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10 0 05-19
85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0 0 05-19
85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7 0 05-18
85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68 0 05-18
85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6 0 05-17
84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86 0 05-17
84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26 0 05-16
84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23 0 05-16
84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21 0 05-15
84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24 0 05-15
84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2 0 05-12
84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13 0 05-12
84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4 0 05-11
84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93 0 05-11
84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8 0 05-10
83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2 0 05-10
83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5 0 05-08
83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8 0 05-08
83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77 0 05-04
83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8 0 05-04
83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12 0 05-02
83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49 0 05-02
83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4 0 04-28
83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37 0 04-28
83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66 0 04-27
열람중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5 0 04-27
82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7 0 04-26
82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22 0 04-26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