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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환(幻) / 강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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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63회 작성일 17-03-22 08:43

본문

()

 

강 수

 

 

마약같은 봄이 왔고

사람들은 흘러간 유행가처럼 또다시 봄을 노래했다

모든 것이 일사분란하게 이뤄졌다

기막힌 각본에 맞춰 꽃망울은 피어났고

적절한 시간에 꽃잎을 날리며 떨어졌다

고장난 CCTV는 순식간에 교체되었고

질서를 깨뜨리는 오류는 바로바로 수정되었다

모든 것이 완벽했으나

자기 배역을 거부한 사람들을 솎아내는 작업은 계속되었다

봄의 중독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은

한강 다리에서 뛰어내리거나

교통사고를 당하거나

불치의 병에 걸리는 형태로

스스로 자신의 배역을 내려놓았다

해마다 좀 더 완벽한 세상이 만들어지고 있었지만

그것이 사람들의 삶을 완벽하게 만들지는 못했다

태어나면서 처음 정해진 배역은 쉽게 바뀌지 않았고

봄이라는 꿈은,

내일이라는 희망은,

치료할 수 없는 바이러스가 되어서

세상을 망가뜨리고 있었다

 

겨울에 지친 사람들이 진짜 꽃의 혁명을 일으킬까 두려워

크고 무서운 손이,

나프탈렌으로 빚은 꽃송이들을 세상에 매달고 있었다

마약처럼,

우리는 나프탈렌 향기나는 봄에 취하여

봄은 애초부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애써 외면하고 있었다

 

 

kangsoo-150.jpg

1998현대시학등단

시집 , 꿈발전소, 서사시집 서사시 대백제

2008년 바움작품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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