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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자에 앉아 / 신영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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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24회 작성일 17-04-10 08:52

본문

물의자에 앉아

 

신영배

 

 

나는 강을 건너고 있었다

시집을 펼쳐 들고 있었다

시집이 무릎 위로 떨어지더니

치마 속으로 사라졌다

나는 치마 속에 손을 넣어

시집을 꺼내려고 했다

버스가 기우뚱했다

치마가 물처럼 출렁였다

강 위에 놓인 다리는 끝이 없고

나는 내려야 할 곳에서 잠이 들었다

정류장엔 언니가 나와 있었다

언니, 죽지 않았어?

우리는 웃었다

가게에서 파란 자두를 샀다

신 자두를 씹고 얼굴을 찡그린 기억은

언니 치마 속으로 들어간 기억

멀리서 집이 파랗게 보였다

불에 타지 않았어?

언니가 애인과 자던 집

우리는 집으로 들어가 마루에 걸터앉았다

강이 이렇게 가까이 있었어?

강물이 밀려와 발 끝에 닿았다

어디가?

언니는 일어섰다

치마가 출렁였다

내 어깨에서 떠나는 거야?

언니는 웃으며 돌아섰다

아직 강 위였다

나는 한쪽 어깨가 물처럼 출렁였다

내려야 할 곳에서 잠이 들었다

 

-《시인동네20174월호에서

 


sinyoungpae-150.jpg

1972년 충남 태안 출생

2001포에지로 등단

시집 기억이동장치』 『오후 여섯 시에 나는 가장 길어진다』 『물 속의 피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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