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추를 좋아하는 여자 / 이병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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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를 좋아하는 여자
이병옥
고추를 좋아하는 여자가 청양 고추를
고추장 꾹꾹 찍어 잘도 먹는다
고추를 고대하던 삼대독자 집안에
고추를 안겨 드리지 못해 당한 설움을 두고두고 씹는다
건 고추보다 물고추를 손수 말려야 직성이 풀리는
맏물 고추를 좋아하는 바로 그 여자다
이웃집 대문에는 애만 낳았다 하면 고추가 매달리는데
대문에 평생 고추 한 번 못 달아본 사연을 죽 펼치다 말고
맵다고 연실 혀를 차면서도 고추는 역시 매워야 맛이 난다고 씩씩 우긴다
고추를 못 낳아 받은 설움을 고추 먹듯이 삼키었다고 했다
지금 여자들 같으면 못 살았지
고추 먹고 맴맴 노래하던
딸딸 딸의 거푸집이 된 그 여자
고추잠자리가 비행하는 날이면
빨간 고추 널어 말리는 고추 좋아하는 가을 여자
유난히 고추에 한이 맺힌 여자
한풀이하듯 고추장 쿡 찍은 고추를 아작아작 씹고 있다
- 시집 『별꿈을 꾸는 꽃』, 2017. 책나무
2004년 《문학세계》 수필부문, 2015년 계간 《스토리문학》 시 부문 등단
수필집 『달과 별처럼 은은한 빛이기를』
시집 『별꿈을 꾸는 꽃』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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