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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피는 시절 / 이성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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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41회 작성일 17-01-24 09:19

본문

피는 시절

 

이성복

 

 

멀리 있어도 나는 당신을 압니다

귀먹고 눈먼 당신은 추운 땅속을 헤매다

누군가의 입가에서 잔잔한 웃음이 되려 하셨지요

 

부르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생각지 않아도, 꿈꾸지 않아도 당신은 옵니다

당신이 올 때면 먼발치 마른 흙더미도 고개를 듭니다

 

당신은 지금 내 안에 있습니다

당신은 나를 알지 못하고

나를 벗고 싶어 몸부림하지만

 

내게서 당신이 떠나갈 때면

내 목은 갈라지고 실핏줄 터지고

내 눈, 내 귀, 거덜난 몸뚱이 갈가리 찢어지고

 

나는 울고 싶고, 웃고 싶고, 토하고 싶고

벌컥벌컥 물사발 들이켜고 싶고 길길이 날뛰며

절편보다 희고 고운 당신을 잎잎이, 뱉아낼 테지만

 

부서지고 무너지며 당신을 보낼 일 아득합니다

굳은 살가죽에 불 댕길 일 막막합니다

불탄 살가죽 뚫고 다시 태어날 일 꿈 같습니다

 

지금 당신은 내 안에 있지만

나는 당신을 어떻게 보내드려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조막만한 손으로 뻣센 내 가슴 쥐어뜯으며 발 구르는 당신

 

 


이성복1.jpg

 

1952년 경북 상주 출생

서울대 불문과 및 동 대학원 졸업

1977문학과 지성등단

2회 김수영문학상 수상

시집 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 『남해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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