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동거울의 노래 / 이영혜 > 오늘의 시

청동거울의 노래

이영혜

나, 얼마나 오래 잠들었나요

폐허가 된 진흙 더미 속에서도

내 안에 숨 쉬던 당신 지워지지 않고

금 간 가슴팍엔 절망이 수수백 번 얼었다 녹았지요

천 년 만의 만남이었나요

안압지 연등 아래서 만난 당신

무엇인가 생각날 듯 말 듯 한참을 응시하다가

그냥 뒷모습이 되어버린 당신

목쉰 외침 들리지 않던가요

전장으로 말 달려간 화랑의 말방울 소리를 기다리며

달빛 아래 탑을 돌던 소녀, 잊으셨나요

순금 허리띠 두르고 금관을 쓴

연회장의 왕을 몰래 흠모하며

연꽃 만발한 월지(月池) 누각에서

비파를 타던 진골 여인, 잊으셨나요

연잎에 맺힌 푸른 물방울 끌어안고

천 년을 기다렸건만

다음 조우는 또 몇 생이 걸릴지 기약도 없건만

거울 속엔 그리움의 녹만 가득하고

도무지 나는, 당신에게 닿을 수가 없네요

하지만 내 슬픈 눈빛이 천년 왕조의 보석임을

천년을 달려온 별빛임을 기억해주세요

영겁의 기다림이면 어때요

언젠가 돌아올 당신 편히 들어앉을 수 있도록

말갛게 거울 닦아놓고

나, 다시 그 안에 당신만을 위한 연꽃을 피우렵니다

 

서울대 치과대학 및 동 치과대학원 졸업(치의학박사)

동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문창과 졸업

2008년 《불교문예》로 등단

시집으로 『식물성 남자를 찾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