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옆구리에 풍경이 있었다 / 장이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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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옆구리에 풍경이 있었다
장이엽
홑이불속에 웅크린 당신의 몸을 보았어요
망막은 닫혔고 달팽이관도 잠들어 버린 그 세계는 고요할까요
검푸른 멍 위를 고양이걸음으로 살짝 스쳐 지나갈 게요
다 늙어 호강하느라 땡땡이 무늬 원피스를 입었다는 말에
입꼬리는 웃는데 혀 밑에 고인 침이 마르네요
가만가만 쓰다듬어 줄 게요
새색시의 젖가슴 애무하던 나이 어린 신랑의 입술을 기억하세요
날 선 톱날 위를 혼자 건너던 마흔 살의 당신은 어디에 있나요
기와지붕 처마에 사다리를 놓고 있나요
벽돌을 쌓고 회벽을 바르던 일흔여덟의 당신은 아직도 새살이 돋기를 기다려요
빛의 조도를 감지 못하는 눈동자를 잊으세요
걷어 올린 눈꺼풀을 풀어 줄 게요
방충망을 파고드는 햇살이 무거워요
이제 그만 옆구리에 매달린 풍경을 울려 볼까요
놀라지 마세요
목에 걸린 식혜 알이 항문까지 내려가도록 천천히 쓸어 내릴게요
빗살무늬 불거진 겨드랑이 사이로 하얗게 떨어져 쌓이는 살비듬
쁘랑때랭그랑쁘랑땡
- 시집 『삐뚤어질 테다』 중에서
1968년 전북 익산 출생
원광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2009년 《애지》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삐뚤어질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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