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울 클레의 관찰일기 / 진은영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파울 클레의 관찰일기 / 진은영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52회 작성일 16-10-18 09:55

본문

파울 클레의 관찰일기

 

  진은영

 

 

 

사랑이나 이별의 깨끗한 얼굴을 내밀기 좋아한다

그러나 사랑의 신은 공중화장실 비누같이 닳은 얼굴을 하고서 내게 온다

두 손을 문지르며 사라질 때까지 경배하지만

찝찝한 기분은 지워지지 않는다

 

전쟁과 전쟁의 심벌즈는 내 유리 손가락, 붓에 담긴 온기와 확신을 깨버렸다

안녕 나의 죽은 친구들

우리의 어린 시절은 흩어지지 않고

작은 과일나무 언저리에 머물러 있다

그 시절 키높이만큼 낮게 흐르는 구름 속으로 손을 넣으면

물감으로 쓸 만한 열매 몇 개쯤은 딸 수 있다, 아직도

 

여러 밝기의 붉은색과 고통들

그럴 때면 나폴리 여행에서 가져온 물고기의 색채를

기하학의 정원에 풀어놓기도 한다

 

나는 동판화의 가는 틈새로 바라보았다

슬픔이 소녀들의 가슴을 파내는 것을

그녀들이 절망을 한쪽 가슴으로 삼아 노래를 멀리 쏘아 올리는 것을

 

나는 짧게 깎인 날개로 날아오르려고 했다

조금씩 부서지는 누런 하늘의 모서리

나쁜 소식이 재처럼 쌓인 화관을 쓰고

 

나는 본 것으로부터 멀어지려 했다

영원히 날아가려 했다

폼페이의 잔해더미에 그려진

수탉들처럼

 

      어찌할 수 없는 폭풍이 이 모든 폐허를 들어 올릴 것이다

 

“인간은 어떻게 그 절망 속에 도달하게 되었는지를 알 때

절망 속에서도 살아갈 수 있다“고

나를 좋아하던 어느 문예비평가가 말했다지만, 글쎄……

그는 국경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나는 해부학과 푸생, 밀레와 다비드를 공부했고

이성과 광기의 폴리포니를 분간할 줄 아는 두 귀에,

광학을 가르치고 폐병과 심장병의 합병증에도 정통했지만

슬픔으로 얼룩진 내 얼굴과의 경쟁에선 번번이 패배했다

 

그때마다 나는 세네치오를 불렀고

부화하기 전의 노른자처럼 충혈된 그가 왔다

 

 

 

1970년 대전 출생
이화여자대학교 철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 졸업.
2000년 《문학과사회》봄호로 등단
시집으로『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 『우리는 매일매일』. 『훔쳐가는 노래』
그 밖에 『순수이성비판, 이성을 법정에 세우다』, 『니체, 영원회귀로와 차이의 철학』등.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326건 55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62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3 0 11-18
62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95 0 11-18
62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08 0 11-17
62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59 0 11-17
62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364 0 11-16
62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5 0 11-16
62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31 0 11-15
61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14 0 11-15
61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96 0 11-14
61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9 0 11-14
61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95 0 11-11
61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1 0 11-11
61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36 0 11-10
61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38 0 11-10
61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57 0 11-09
61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40 0 11-09
61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18 0 11-08
60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8 0 11-08
60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55 0 11-04
60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9 0 11-04
60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1 0 11-03
60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19 0 11-03
60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3 0 11-02
60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53 0 11-02
60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31 0 11-01
60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3 0 11-01
60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03 0 10-31
59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69 0 10-31
59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03 0 10-28
59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78 0 10-28
59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19 0 10-27
59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72 0 10-27
59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00 0 10-25
59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20 0 10-25
59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4 0 10-24
59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08 0 10-24
59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86 0 10-21
58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60 0 10-21
58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98 0 10-20
58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64 0 10-20
열람중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53 0 10-18
58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00 0 10-18
58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2 0 10-17
58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80 0 10-17
58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57 0 10-13
58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28 0 10-13
58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21 0 10-12
57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79 0 10-10
57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418 0 10-10
57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149 0 10-07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