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상(內傷) / 윤의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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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상(內傷)
윤의섭
상처는 아물고 상처는 죽는다
상처는 입을 닫고 상처는 귀를 연다
씻어주고 약을 주고 후일담을 들려주면 자라다 만다
쓰라리다 잠잠해진다 더는 호소할 일이 없어서
상처는 기억을 봉합한다 상처는 묻고 묻힌다
상처엔 입김이 스며있다 한숨이 들어있다
찢어진 속살은 처음 하늘을 보았고 바람의 온기를 느꼈고
은은한 상흔은 달빛을 닮은 것이다
상처의 내력을 거슬러 오르면 태초에 가닿는다
닿은 게 머무는 곳이어서
어떤 상처는 세속적이다 어떤 상처는 성소다
발목에 사는 상처와 어깨부터 손가락에 새겨진 상처를 이으면
나는 상처의 집에 기숙하고 있다
얼마 전 입은 내상과 함께 산다
이번 내상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하늘도 바람도 달도 없는 세상에서 하늘도 바람도 달도 없는 세상을 거느리며
상처는 상처만 남은 몸을 삼키고
밖에선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고통을 피우고
고통만 남았으므로 고통스럽지 않은 고통으로
1968년 경기 시흥 출생
아주대 국문과 졸업(국문학 박사)
1994년 『문학과사회』 등단
시집 『말괄량이 삐삐의 죽음』,『천국의 난민』,
『붉은 달은 미친 듯이 궤도를 돈다』 』,『마계』.『묵시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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