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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 이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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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877회 작성일 16-10-28 10:06

본문

 오후

 

    이우성

 


나무 아래 의자에 앉아 선생이 말씀하셨다

 

잘 때 자고

먹을 때 먹고

쌀 때 싸면

잘 사는 거다

 

그래서 내가 강 건너 산을 보며 말했지

 

바람만큼이나 빤한 말씀

 

그러자 선생이 다시 말씀하셨다

 

잘 때 딴생각 안 하고 잠만 잘 수 있어야 하고

먹을 때 딴생각 안 하고 먹을 수만 있어야 하고

쌀 때 딴생각 안 하고 쌀 수만 있어야 한다

고개를 세 번 끄덕였는데 그때마다 짝사랑하는 여자가 생각났다

그래서 내가 말했지

 

그런 삶이라면 도전해볼 만하겠어요

 

선생과 나는 말없이 앉아만 있었네

강물이 강물을 밀치는 소리

풀과 풀 사이를 벌레가 뛰어넘는 소리

내가 늙어서 선생이 되는 소리

선생이 흰 머리카락을 하나 뽑아 들고 후 불며 새로 변신하는 소리

 

선생은 날아가며 한 말씀 더 하셨지

갈 때 안 됐냐 바쁘다며

 

대답도 안 듣고 선생은 날아가고

빈 하늘은 종이마냥 흔들리고

나는 벌린 팔을 움츠리려고 어깨에 힘을 줘보는데

 

그저 살 부딪치는 소리

 

가볍게 가볍게 그늘을 몸 밖으로 튕겨내며 시원해지는 소리




leews.jpg

 

1980년 서울 출생
대진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2009년 한국일보 신춘문예 시부문 당선
시집『나는 미남이 사는 나라에서 왔어』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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