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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건 / 이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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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93회 작성일 16-09-0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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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수건 


 이기인

 

 

헐은 옷소매를 움직이는 그녀에게로 눈시울이 붉은 바람이 온다

 

그녀 등 뒤로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아서 한 송이 파꽃을 피워 올리는 시간이 흔들린다

 

울음을 데리고 온 새 한 마리 어둠이 오는 쪽을 기웃거린다 흙을 튀기며 날아간다

 

비 오는 날에 새로이 떨어진 돌멩이 밭 한가운데 박혀있다 홀로 상처를 꺼내어 본다

 

밭 가생이로 올라온 풀들이 촘촘히 우거진 느릅나무 숲으로 들어가서 울고 싶다

 

흰 수건을 오랫동안 머리에 쓰고 있던 그녀의 호미는 하던 일을 멈춘다

 

잔글씨들처럼 많은 가지와 잎사귀와 뿌리가 한 호흡을 멈추고서 그녀를 둘러본다

 

울리지 않는 종소리처럼 아직 걸어 나오지 않은 밭 모서리 그늘을 본다

 

흰 수건을 머리에 감은 그녀는 아름다운 저녁을 향하여 손을 흔든다

 

 


leekiin-150.jpg

 

1967년 인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성균관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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