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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야의 바람 / 최호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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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971회 작성일 16-07-15 08:02

본문

 

마야의 바람 

 

    최호일

 

 

   붉은 양탄자 위에 마야의 검고 긴 머리칼이 선명하다 머리칼이 없어지고 깊고 검은 눈이 보인다 봄이나 여름, 가을, 겨울 따위의 계절들이 동일한 이름의 골목을 다녀가고 

 

   검은 눈이 지워지고 붉은 입술이 보인다 붉은 입술이 지워지고 붉은 옷에 검은 벨트가 보인다 검은 벨트가 보인다 앞의 글자가 하나씩 지워져야 써지는 어제의 문장처럼 몸이 있거나 없는 것들의 기억을 따라서 

 

   우연히 돌아보면 모르는 여자가 소파에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저녁이 있다 열매를 따라서 숲으로 들어가 숲이 된 검은 여자도 있다는데 걷잡을 수 없는 밤은 아침보다 먼저 태어난다 어둠을 손에 켜서 들고 다니는 사람의 얼굴을 하고  

 

   노랗고 질긴 고무줄처럼 시간의 얼굴이 두 배로 늘어날 때

   그 사이에 바람이 불지 않는다 머리칼과 눈과 입술과 붉은 옷 사이에 바람이 불지 않는다 사이가 사라지다 드디어 어두운 뱀이나 의자 따위가 된다 뱀을 따라가 보니

 

   바람이 불고 있다 마야의 손이 흔들리고 있다

   그곳에 소파는 놓여있고

 


최호일~1.JPG

 

1958년 충남 서천 출생
2009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집 『바나나의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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