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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가루의 맛 / 이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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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13회 작성일 16-04-27 09:32

본문

밀가루의

 

이혜미

 

얼음을 핥으며 오래 말을 아꼈지

케이크를 자르고 낮술을 마시던 창가에서

 

그 희고 연약한 윤곽을 망쳐놓으며

너는 없는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다

무심히 손을 휘저으며

미음과 리을 받침에 대해 이야기했지

 

나는 알곡처럼 선연하다

분명하여 부서지는 것들에 대해

부서지며 같은 크기의 입자가 되어가는 것들에 대해

 

왜 부서져 떠돌다 싫은 덩어리로 마무리되는 것일까

 

입으로 불어도 손으로 쓸어도 자국을 남기던 눈송이들

얼어붙은 잔설이 회색으로 얼룩진 그 창가에서

 

흰 가루라면 무엇이든 슬프던 계절이 지나간다

 

눈처럼 녹아 사라질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끈질기게 혀에 붙어 끈적이는

더럽고 슬프고 무거운

 

 

 

안양 출생
2006년 중앙신인문학상 당선
2009년 서울문화재단 문예창작기금 수혜
시집으로『보라의 바깥』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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