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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피지의 밤 / 하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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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085회 작성일 16-05-02 09:17

본문

 

양피지의 밤

 

하재연


이런 밤마다

나의 시간이 얇아지고 있다.

짐승의 가죽과 같이

늘어나는 것 해어지는 것 결국 구멍이 나 버리는 것들.


구멍 너머로

먼 세계가 보인다.


우주의 커다란 손가락으로 토성의 고리를 만지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아름답고 얼얼하게

투명한 글자를 쓴다.


시간을 이어 붙여 생긴 삼각지대에

너의 이름 앞으로 초대장을 쓴다.


안녕, 하는 입술의 벌어지는 ㅇ과 닫히는 ㅇ을

소리 없이 흉내 내며 눈이 그칠 줄 모르는

꿈속의 네 집 앞을

발바닥으로 무용하게 쓸고 있었다.


토성의 고리가 되어 버린 어떤 죽음을 생각하며


네가 도착할 수 있는 거리를

처음으로

발명하기 위해

 

 

1975년 서울 출생
고려대 국문과와 대학원 박사과정
2002년 제1회 《문학과 사회》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시집 『라디오 데이즈』『세계의 모든 해변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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