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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스타치오의 표정 / 박홍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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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276회 작성일 16-03-21 10:26

본문

 

피스타치오의 표정

 

박홍점

 

선 채로 지하 주차장에서 봉투만 건네고 간다

옷자락만 펄럭이다

서늘함 남기고 가는 도둑고양이


제철 모르고 화단에 붉은 접시꽃 핀다


한 번도 신어 본 적 없는 사내의 신발 한 켤레

삼백육십오 일 현관에 내어놓고

지금 막 해외 출장에서 돌아왔어

묻지도 않은 말에 답하는 여자

찬조 출연으로 집 안까지 들어온 날은

성난 바람을 몰고 와서 화분이 깨지고 식탁 유리가 튄다

찻잔을 뛰쳐나와 거실 천장에 두서없이 그려지는 별들


그럼에도 손놀림이 리듬을 달고 흥얼거린다

능소화가 한 옥타브 뛰어올라 벙글어진다


어느 날은 귀 하나 사라지고

어느 날은 정강이뼈 부러지고

잠이 달아나 버린 수많은 밤들

무슨 이유로 사내는 복면을 하고 밤에만 왔다 가는지


배고픈 일곱 능선의 바리데기

흥분한 바람이 머리통을 갈기고 가도

무슨 일 있었나? 순진무구의 눈동자

튀어 오르는 두더지는 언제나 제자리다

한밤중 아이들의 아비가 왔다 갔어

목젖이 보이도록 그녀의 웃음이 깊다

소리가 부레를 달고 붕붕 떠다닌다

 

 

 

1961년 전남 보성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학과 졸업

2001문학사상으로 등단

시집 차가운 식사『피스타치오의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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