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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 / 이병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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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64회 작성일 16-02-18 08:56

본문

 

온다는 없이 간다는 없이


 

이병률

 

늦은 밤 술집에서 나오는데 주인 할머니
꽃다발을 놓고 간다며
마늘 찧던 손으로
꽃다발을 끌어안고 나오신다

꽃다발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할머니에게

이 꽃다발은 할머니에게 어울리네요
가지세요
 
할머니는 한사코 가져가라고 나를 부르고
나는 애써 돌아보지 않는데

또 오기나 하라는 말에
온다는 말없이 간다는 말없이
꽃 향은 두고
술 향은 데리고 간다
 
좁은 골목은
식물의 줄기 속 같아서
골목 끝에 할머니를 서 있게 한다

다른 데 가지 말고
집에 가라는 할머니의 말

신(神)에게 가겠다고 까부는 밤은
술을 몇 잔 부어 주고서야
이토록 환하고 착하게 온다

 

 

 

1967년 충북 제천 출생
서울예전 문창과 졸업/파리 영화학교 ESEC 수료
199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당선
시힘 동인
시집 『당신은 어딘가로 가려 한다 』『바람의 사생활 』『찬란』
『눈사람 여관』, 산문집 『끌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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