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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미어리그의 세탁부들 / 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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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550회 작성일 16-03-10 10:04

본문

 프리미어리그의 세탁부들

​ 리산

 

 그리하여 우리는 유령일뿐

 깊게 출렁이며 흘러가는 강물의 그림자도

 만나지 못한다. 대낮의 백양나무와

 삼나무 그림자 속에도 들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지 유령일뿐

 두통과 불면의 밤을 지나온 유령일뿐

 서로의 그림자 속에 들지 못하므로

 우리의 대낮과 밤 속에는 태양도 별빛도

 서로의 그림자를 만들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지 유령일 뿐

 유리잔 속에 떠도는 몇 모금의 상념일 뿐

 연기로 부유하는 흐린 영혼의 구름일 뿐

 우리는 서로에게 그림자를 만들지 못하므로

 꿈꾸어도 죽어가는

 꿈꾸지 않아도 사라지는

 

 그리하여 우리는 단지 유령일 뿐

 몇 번의 혼숙과 합숙의 날들 속에서도

 새벽닭이 우는 희부윰한 들판을 바라보며

 가야할 곳의 몰락과 몰락의 지평선을 아득히 바라보는

 우리는 단지 유령일 뿐이어서

 빛과 어둠의 상처를 보듬지 못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단지 유령일 뿐

 눈물의 가장 깊은 그림자를 만지지 못한다

 아무런 상처의 그림자도 만들지 못한다 


leesan-140.jpg

1966년 서울 출생.
동국대학교 대학원 문예창작과 석사과정 졸업
2006년 《시안》 신인상 당선
<센티멘털 노동자동맹> 동인
시집 『쓸모없는 노력의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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