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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어리 / 천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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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93회 작성일 15-10-21 11:07

본문

다이어리

 

   천수호

 

 

 

그와 함께 붓던 적금을 어쩌나

해외여행 가자고 했던 저 거액을 어쩌나

배낭 위에 태워서 가자 할 수도 없고

호주머니에 넣어서 가자 할 수도 없게

용도는 잃고 액수만 커져 가는 저 날짜들

 

키 큰 소나무 뿌리로만 향하는 그 마음을 잘라서

내 가슴 골짜기에 이식할 수도 없게 그는 이미 내 사람이 아니고

빗물에 한 눈금씩 녹아들어가는 그 몸을 어떻게 뭉쳐서 다시 업고 가나

 

그의 명의를 가진 적금 통장

찾기에도, 계속 붓기에도, 어정쩡해진 통장

키 큰 소나무 앞에 통장을 펼쳐놓고 절을 한다

이 돈 좀 가져가소 제발 좀 가져가소

 

그는 이미 가고 없고 숫자는 점점 불어만 간다

나는 갈 곳도 없이 머무를 계획도 없이

또박또박 옮겨 적고 있다

내가 녹은 뒤에도 쌓여갈 그 날짜들

 

 

 

1964년 경북 경산 출생
명지대 박사과정 수료
2003년 《조선일보》신춘문예로 등단
시집 『아주 붉은 현기증』 『우울은 허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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