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가 자라는 시간 / 이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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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기가 자라는 시간
이기인
일을 찾아서 북으로 가는 이의 남쪽으로 열려 있는 현관
그 문가에 쪼그리고 앉아서 사글세를 사는 화분
그 속에서 한줌 햇살과 흙을 얻어 잎사귀를 키우는 토란
잎사귀, 귀는 아직 세상사를 알아듣기에는 얇아 보이고
계속 자랄 것 같은 토란 줄기 가랑이는 찢어진다
북으로 가는 줄기는 남으로 가는 줄기보다 짧고
남으로 가는 줄기는 북으로 가는 줄기보다 가늘고 아프다
둥글넓적 잎사귀를 들고서 스러질 듯 스러지지 않는 줄기의 시간이 자란다
일을 나간 이가 돌아올 때까지 가늘게 흔들리겠으나 주저앉기는 싫다는 토란 줄기의 약속!
토란잎 줄기는 휘어져서 땅으로 내려와 쉬고 싶어 죽겠다

1967년 인천 출생
서울예대 문예창작과 졸업, 성균관대 국문학과 박사과정 수료
2000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 『어깨 위로 떨어지는 편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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