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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닉 / 백무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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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680회 작성일 15-11-09 10:39

본문

패닉

 

백무산
 

 

어쩌다 한밤중 산길에서

올려다본 밤하늘

만져질 듯한 별들이 패닉처럼

하얗게 쏟아지는 우주

 

그 풍경이 내게 스며들자

나는 드러난다

내가 폐허라는 사실이

 

죽음이 갯벌처럼 어둡게 스며들고

사랑이 불같이 스며들고

모든 질서를 뒤엎고 재앙의 붉은 피가 스며들 때

나는 패닉에 열광한다

 

내게 고귀함이나 아름다움이나

사랑이 충만해서가 아니다

내 안에 그런 따위는 눈을 씻고 봐도 없다

그런 따위로 길이 든 적도 없다

 

다만 가쁜 숨을 쉬기 위해서

갈라터진 목을 축이기 위해서

존재의 소멸이 두려워 손톱에 피가 나도록

매달린 적은 있다

고귀함이나 사랑 따위를 발명한 적은 있다

 

패닉만이 닿을 수 없는 낙원을 보여준다

나는 그 폐허를 원형대로 건져내야만 한다

 


081023_baek1_lmedia.jpg

 

1954년 경북 영천 출생
1984년 「민중시」 1집에 '지옥선' 등을 발표하면서 등단
이상문학상, 만해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수상
시집『만국의 노동자여』『동트는 미포만의 새벽을 딛고』『초심 』,『길밖의 길』『거대한 일상』

『폐허를 인양하다』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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