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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거운 경전 / 조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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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877회 작성일 15-10-01 10:02

본문

거운 경전(經傳)

 

   조경희

 

 

배고픈 이의 한끼니 빵도

푸른 내일의 새싹 한잎 틔울 종자(種字)도 되지 못한,

한가지 바람은

생의 꽃 활짝 피워보는 일

 

바람의 수레를 타고 흐르는 시간을 거슬러 흰 눈 내리는 거리를 지나자

이내 낙엽이 우수수 떨어져날리고 있었네

 

전생에 내가 살았던 마굿간 처마 밑

수염이 허옇게 센 깡마른 노인이 누런 이를 드러내며 골동품처럼 앉아 있었네

그가 멈춰진 시간의 태엽을 다시 돌리며

품안의 경전을 꺼내 내밀었네

  

활활 타오르는 경전

뜨거운 말씀 읽다보면 길은 수미산으로 향하고, 불꽃을 유희(遊戱)하듯

억겁(億劫)의 시간 오가며 맨몸으로 읽었네

읽으면 읽을수록 안으로 단단히 구워지는

무념무상(無念無想)의 몸 어느새 아득해지고 있었네

  

마침내 종이 울리고

시간의 톱니바퀴는

뻥튀겨진 시간의 문 앞에

날 데려다 놓았네

  

문이 열리며

내 몸은 한송이 꽃 되어 활짝 부풀고

노인은 오래 된 비밀처럼 푸른 옥수수밭 속으로 사라졌네

  

시간을 여행중인 바람은 거리마다 벚꽃을 피워놓은 채 안데스 산맥으로 떠나버리고

한 손에 강냉이를 들고 환하게 웃는 다정한 연인들

 

 

 

 

 

조은.jpg


충북 음성 출생
2007년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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