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다시는 / 나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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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다시는
나희덕
문을 뜯고 네가 살던 집에 들어갔다
문을 열어줄 네가 없기에
네 삶의 비밀번호는 무엇이었을까
더 이상 세상에 세 들어 살지 않는 너는 대답이 없고
열쇠공의 손을 빌려 너의 집에 들어갔다
금방이라도 걸어 나갈 것 같은 신발들
식탁 위에 흩어져 있는 접시들
건조대 위에 널려 있는 빨래들
화분 속에 말라버린 화초들
책상 위에 놓인 책과 노트들
다시 더러워질 수도 깨끗해질 수도 없는,
무릎 꿇고 있는 물건들
다시, 너를 앉힐 수 없는 의자
다시, 너를 눕힐 수 없는 침대
다시, 너를 덮을 수 없는 담요
다시, 너를 비출 수 없는 거울
다시, 너를 가둘 수 없는 열쇠
다시, 우체통에 던져질 수 없는, 쓰다 만 편지
다시, 다시는, 이 말만이 무력하게 허공을 맴돌았다
무엇보다도 네가 없는 이 일요일은
다시, 반복되지 않을 것이다
저 말라버린 화초가 다시, 꽃을 피운다 해도

1966년 충남 논산 출생
연세대 국문과와 동대학원 박사과정 졸업
1989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당선
시집으로『뿌리에게』『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그곳이 멀지 않다』
『어두워진다는 것』『사라진 손바닥』 『야생 사과』『말들이 돌아오는 시간』
시론집『보랏빛은 어디에서 오는가』, 산문집『반통의 물』 등
김수영문학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현대문학상, 이산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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