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당 끝 싸움 / 맹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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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 끝 싸움
맹문재
1.
남의 땅을 사용하네 ― 무슨 소리?
법대로 하세 ― 그러세
군청 다니는 아들이 지적도를 다 봤네 ― 우리 조상도 다 보네
우리집 마당 끝을 당신네 땅이라고
친구 아버지가 주장하자
조상 대대로 살아온 땅이라고
아버지가 맞섰다
마을 길을 넓히는 과정에서 자기 집 땅을 서로 지키려고
자식 문제를 꺼내고
이웃집 험담을 알리고
섭섭한 거래를 다시 거래하고
마침내 법까지 동원한 것이다
2.
우리집 마당 끝에는 할아버지 때부터
댑싸리가 무성하게 자랐다
늦가을에는 짚가리가 자리 잡았고
겨울에는 나뭇단이 쌓였다
장마가 지는 때는 그곳 옆으로 흐르는 도랑물을 살펴보고
나는 걱정을 배웠고
눈이 오는 날에는 그곳까지 쓸고
세상을 내다보았다
3.
억울함을 토로하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우리집 마당 끝은 울렁거렸고
굳은살 박인 곳곳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그곳은 우리집 그림자가 닿을 수 있는 한계선이었다
목가를 부를 수 있는 넓이도
수확을 얻을 수 있는 기운도 없었지만
나는 빼앗길 수 없었다
나의 기세는
큰아들의 말을 절대적으로 듣는 아버지를 넘고
마당 끝을 넘었다
4.
아버지, 바둑돌처럼 양보하세요
―계간 《문학과의식》 2022년 여름호

1963년 충북 단양 출생
고려대 국문과 및 동 대학원에서 수학
1991년 《문학정신》 등단
1993년 전태일 문학상, 1996년 윤상원문학상 수상
2013년 고산문학대상 수상
시집으로 『물고기에게 배우다』『사과를 내밀다 』,
저서로 『한국민중시문학사』,『페미니즘과 에로티시즘 문학』,
번역서로 『포유동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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