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쟁이, 너의 발랄한 옥빛 / 김금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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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쟁이, 너의 발랄한 옥빛
김금용
왜 너를 보면 아플까
너의 발랄한 옥빛이
간지럼 잘 타는 너의 웃음소리가
풍랑이 일던 어젯밤의 두려움을 거뜬히 넘기고
막 세수한 뽀얀 얼굴로 콘크리트 벽을 부드럽게 감싸니
기적인가, 물기가 스민다
발걸음 멈추고
네 두 팔 두 다리 벌려 춤추며 그려놓은 푸른 세상을 바라본다
너의 낭랑한 웃음소리가 들렸던 것일까
비바람을 이겨내고 지어놓은 푸른 옷 한 벌이 펼쳐진다
눈썰미 좋은 지하 방 수선집 할아버지도
크게 두 팔 벌려 가로세로 크기를 가늠해보는데
콘크리트 벽 틈바구니로 엄지손톱만한 잎을 내밀고
저마다 햇살 받쳐 들고 푸른 손짓을 하고 있으니
너로부터 꿈이 자라는 줄 알겠다
빛이 넘치는 옥탑방에서 어둠이 넘치는 지하방까지
푸른 농담을 던지는 담쟁이넝쿨,
이 악물고 달려왔을 네 열정에 목이 잠긴다
나이를 먹고도 사랑이 뭔지 모르겠지만
녹주석 빛 울렁증에 심장이 춤추는 걸 보면
시린 사랑이라는 걸 알겠다
널 보면 아프다
—계간 《시와 편견》 2022년 봄호

동국대 국문과 졸업
중국 베이징 중앙민족대학원 중국문학과 졸업
1997년 《현대시학》등단
시집 『광화문 쟈콥』 『넘치는 그늘』 『핏줄은 따스하다, 아프다』
번역시집 『문혁이 낳은 중국현대시』 『나의 시에게』
중역김남조시선집 『今天與明天( 오늘 그리고 내일)』 등
펜번역문학상, 동국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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