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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염 / 채수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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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시마을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790회 작성일 22-12-29 20:21

본문

오염

 

    채수옥

 

비닐장갑을 끼고 마스크를 써야만 당신을 만질 수 있다

당신은 다만,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는 것으로 이 세계를 방치한다


위험한 물질로 분류된 내가 오래 머무를 수 없는

이곳,


시트에 묻은 혈흔 같은 얼룩들이 당신에게서 빠져나와

내게 스며든다


- 꼭 너 같은 새끼 낳아서 키워 봐라


던져진 장갑처럼

펼쳐진 손금 밖으로 계단이 흘러간다

새로 태어난 눈보라가 언덕을 넘어오고, 신발 한 짝

뒹구는 수수밭에 죽은 물고기들이 떠올랐다


쪼글쪼글 껍질만 남은 감자

스스로 아가미를 열고 닫을 수 없는 당신을,

가장 치명적으로 오염시킨 내가 묻는다

- 나 알아보겠어?


내가 낳은 그림자들이 내 얼굴을 침대 아래로

밀어 버린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서둘러 각자의 얼굴을 주워 들고

중환자실을 떠났다


​―채수옥 시집, 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파란, 2019)




사진(채수옥).jpg


2002년 실천문학》 등단 

시집 비대칭의 오후오렌지는 슬픔이 아니고덮어놓고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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