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있다'와 '없다' 사이로 양떼를 몰고 / 윤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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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06회 작성일 17-07-24 13:53본문
‘있다’ 와 ‘없다’ 사이로 양떼를 몰고
-환지통.3
윤석산
창밖 벤치에 그 사람이 앉아 있습니다.
지난 가을 헤어진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내 생각이
앉아 있습니다.
심심할 때마다 ‘뭐해?“ 톡을 보내던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내 슬픔이 앉아 있습니다.
바람이 불고 꽃잎들이 지고……
그 사람이 바르던 스킨 냄새가 스며 들어와
풍경 속 그 사람과 생각 속 그 사람은 어떻게 다를까 생각하다가
산다는 건 뭐고, 사랑한다는 건 뭐며, 내가 죽어도 그 사람은 저기
앉아 있을까 생각하다가
아내가 늦은 저녁을 준비하며 달그락달그락 그릇 씻는 소리를 듣다가
‘있다’와 ‘없다’ 사이로 아득하게 열리는 초원으로
우리 안에 가둔 생각들을 몰고 아주 먼 길을 떠납니다.
어? 그 사람이 일어나 손을 흔드네요.
다 어두워진 시각에 흩어지는 생각들을 몰고 길을 떠나는 게 우스운가 봐요.
삘릴릴 삘릴리……, 오늘 저녁 서역까지 갈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 윤석산 시집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의한 통증』 (황금느티나무, 2016년)에서
1946년 충남 공주 출생
국민대 국문과 및 한양대 대학원 국문과 졸업(국문학박사)
1972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나는 왜 비 속에 날뛰는 바다를 언제나 바라보고만 부르는 걸까』
『다시 말의 오두막집 남쪽 언덕에서』 『우주에는 우리가 지운 말들이 가득 떠돌고 있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에 의한 통증』
가족시집 『보통파랑새가 아니다』 등
제15회 윤동주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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