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게임 / 박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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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3,106회 작성일 17-09-20 13:36본문
진실게임
박상수
우린 너를 믿는다
는 말은 무슨 뜻일까 너희는 몇 년 만에 다시 만난 사촌 언니들처럼
속삭이며 내 등을 토닥거리지만 너무 오래 자고 계속 일어나는데도
어째서 해는 뜨지 않는 것일까
이불도 없이 쓰러져가는 너희들, 오늘 밤엔 진실하다 향초 앞에서
그래, 영원히 아침을 맞이할 수 없는 사람들의 표정으로 우린 진실해
배다른 동생의 자취방에 들렸고 팔은 버둥거렸지만 입술은 나도
모르게 더욱 벌어졌어
손대면 손댈수록 무거워지는 트렁크를 들고 침대칸을 타고, 멀리멀리
가버리는 나의 이야기
하지만 너희들, 나를 놓쳐선 안 돼, 나는 그것이 내 안에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어! 나는 더욱 풍선을 크게 불고 자주 어지러워져서
내 생일, 엄마 생일, 첫눈 오는 날, 재혼한 아빠와는 세 번, 1년에
세 번을 만나는데 그날엔 제일 예쁘고 싶어서 코밑 솜털을 뽑고
레이디 쉐이브를 하고, 한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어서 내 몸의
모든 그것을
우린 너를 믿는다는 말은 골치 아픈 거짓말은 그만, 이라는 뜻
나는 코를 너무 풀다가 드디어 몸이 망가진다 소리치는 너희를 버리고
민박집 대문을 달려나가며, 일출이 오고 있어 얘들아, 우리가 여기 온 건
그것 때문인데, 나는 그것을 보려고 했는데
앞으로 잘될 거야, 라면 정말 잘되어갈 수 있을까.
- 박상수 시집 『숙녀의 기분』(문학동네, 2013년)중에서
1974년 서울 출생
명지대 대학원 문창과 박사과정 수료
2000년 《동서문학》시부문, 2004년 《현대문학》 평론 등단
시집 『후르츠 캔디 버스』 『숙녀의 기분』
평론집 『귀족 예절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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