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잣말, 그 다음 / 함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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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1건 조회 3,011회 작성일 17-11-28 09:00본문
혼잣말, 그 다음
함성호
혼잣말 그 다음—이 도시는
거대한 레코드판이 되었다
어디를 가나 혼잣말이 들려왔다
아파트 단지의 쥐똥나무 울타리를 타고 흐르고
신호를 기다리는 건널목을 가로질러
말하듯 노래하기로 다가오기도 했다
어디서 불어오는 바람에 호수의 물결이
혼잣말로 들린 것도 그 다음이었다
혼잣말이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기도 했고
혼잣말이 사라진 자리를 단풍나무와 사철나무가
실망으로 우거져 내리어 메운 것도 그 다음이었다
새벽의 골목에서는 혼잣말의 그림자가
사방에서 포위해 오며 들려오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가
혼잣말의 홈을 따라 도는 바늘 같기도 했다
이 도시에 누가 혼잣말을 기록하고 다녔는지
혼잣말은 지하철로에도, 계단에도, 복도에도
유리문의 경첩에서도 투명하게 울려 나왔다
아무도 듣지 못하는 혼잣말을
홀로 듣는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었지만
이 미약한 신호를 증폭시키는
내가 미친 것은
혼잣말, 그 다음이었다
—《포지션》 2017년 가을호
1963년 강원도 속초출생
강원대 건축과 졸업
1990년 계간 《문학과사회》로 등단
시집 『聖 타즈마할』『56억 7천만년의 고독』『너무 아름다운 병』
『키르티무카』
산문집 『허무의 기록』등
댓글목록
童心初박찬일님의 댓글
童心初박찬일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홈페이지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삶과 세상 속에 흩어진 본질은 무엇일까?를 되새김합니다.
레코드 소리나 혼자 듣는 음악 속에 묻힌 나뉘지 못하는 본질은 삶의 무엇이었는가?
어쩌면 시란 것이 이런 본질에 대한 노래들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지만..
감사히 읽고 갑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