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집 / 배창환 > 오늘의 시

본문 바로가기
사이트 내 전체검색
시마을 Youtube Channel

오늘의 시

  • HOME
  • 문학가 산책
  • 오늘의 시

 (관리자 전용)

☞ 舊. 테마별 시모음  ☞ 舊. 좋은시
 
☞ 여기에 등록된 시는 작가의 동의를 받아서 올리고 있습니다(또는 시마을내에 발표된 시)
☞ 모든 저작권은 해당 작가에게 있으며, 상업적인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습니다

낯선 집 / 배창환

페이지 정보

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044회 작성일 18-04-02 10:57

본문

낯선 집 
       
      배창환 


                           
나 오래 전부터 꿈꾸었지 멀고도 가까운 훗날
내가 살고 있는 이 집 지나다 무작정 발길 이끌어 들르는 때를
그때 이 집에는, 아이들과 함께 자전거 타고 놀던 밝은 햇살과
그늘이 흐릿하게 새겨진 오래 된 이 목조 건물에는 낯선
사람들이 살고, 중년 안주인이 마당과 부엌을 방앗간 참새처럼 들락거리면서
수돗가에 앉아 방금 텃밭에서 뽑아온 배추를 씻고 파를 다듬고
둥근 기와지붕도 잡풀 성성한 앞마당도 백구 강아지도 뒤란의 물길도
이 집 지켜 온 감나무 가지도 청설모가 들락거리던 속이 텅텅 빈 호두나무도
우물 메운 자리 뿌리 내린 매실나무도 어린 불두화도
어떤 것은 그대로이고 어떤 것은 몰라보게 자랐고 어떤 것은 사라져버린
생전 처음 보는, 아주 낯선 집처럼 서서 흐려가는 집


나는 모른 체 마당에 들어서서 옛날 영화에 나오는 선비처럼
이리 오너라, 호기로이 큰 소리로 주인을 부르려다 말고
계십니까? 계세요? 안에 아무도 안 계십니까?
소리를 낮추어, 지나가는 사람인데요, 목이 말라서, 입을 열어
물 한 그릇 얻어 천천히 마시면서 눈은 재빨리 마루 안쪽
지붕을 지탱하는 아름드리 적송 대들보와 거기서 발 죽죽 벋은 서까래와
언젠가 손질하려다 결국 못하고 만, 회 떨어져 나가 둥글게 패인 자국과
남궁 산의 89년 작 ‘봄처녀’ 판화 걸었던 못 자리와 내 책장 섰던 자리
꽂혔던 잡지와 흔들릴 때마다 나를 받쳐 온 시집들을 떠올려보면서
이윽고 내가 물그릇을 다 비우고 빈 그릇을 돌려주면 주인 아주머닌
참 별 희한한 사람 다 있네, 남의 집 뭐 한다고 뚫어보고 난린고, 고개 갸우뚱하며
미닫이 유리문을 스르르 쾅, 닫아버릴 때 내 가슴도 함께
닫혀버리는 짧은 순간, 아찔해져 비틀거리다 겨우 중심을 잡고     
발길을 돌려 돌아가는......그런 순간을
    
그러면 나는 안녕,
나의 집이여, 고마운 햇살이여 그늘이여, 바람에 쌓여 간 시간이여
안녕, 지난날들에 무수히 고맙다고 아프다고 절하고 돌아서면서
변함없이 돋아난 마당의 잡풀마다 머리 쓰다듬어 주고 변함없이
푸르른 하늘, 동산 상수리나무 머리 위로 내려온 파란 하늘에 손을 적시면서 
발걸음에 바위 추를 달고, 절대로 뒤돌아보지 않으려고 이를 악물면서
그래, 인생이란 이런 거야, 그럼, 이런 것이고말고
다시는 이곳에 돌아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다짐하며 돌아서는 집
그 날을 꿈꾸면서, 그날이 오기를, 그날이 오지 않기를 기다리면서  
나는 오늘도 그리운 그 옛집 낯선 집에 산다 


- 《내일을 여는 작가》 2006년 겨울호

  

 


배.jpg

1955년 경북 성주 출생

1981세계의 문학으로 등단

시집 잠든 그대』 『다시 사랑하는 제자에게

백두산 놀러 가자』 『흔들림에 대한 작은 생각

겨울 가야산』 『소례리 길

시선집 서문시장 돼지고기 선술집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Total 3,178건 40 페이지
오늘의 시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조회 추천 날짜
122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28 0 05-15
122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82 0 05-15
122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39 0 05-11
122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91 0 05-11
122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12 0 05-10
122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60 0 05-10
122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49 0 05-09
122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82 0 05-09
122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4177 0 05-08
121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95 0 05-08
121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42 0 05-04
121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80 0 05-04
121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848 0 05-02
121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85 0 05-02
121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44 0 04-30
121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00 0 04-30
121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08 0 04-27
121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43 0 04-27
121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22 0 04-26
120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59 0 04-26
120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15 0 04-23
120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587 0 04-23
120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40 0 04-19
120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43 0 04-19
120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11 0 04-18
120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08 0 04-18
120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94 0 04-17
120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839 0 04-17
120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05 0 04-16
119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3 0 04-16
119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258 0 04-13
119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02 0 04-13
119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3066 0 04-12
119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47 0 04-12
119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43 0 04-11
119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05 0 04-11
119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50 0 04-10
119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794 0 04-10
1190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913 0 04-09
118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08 0 04-09
1188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621 0 04-09
1187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80 0 04-05
1186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98 0 04-05
1185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228 0 04-04
1184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29 0 04-04
1183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03 0 04-03
1182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417 0 04-03
1181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518 0 04-02
열람중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045 0 04-02
1179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2319 0 03-30
게시물 검색

 


  • 시와 그리움이 있는 마을
  • (07328)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나루로 60 여의도우체국 사서함 645호
  • 관리자이메일 feelpoem@gmail.com
Copyright by FEELPOEM 2001.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