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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개인 저녁의 안부편지 / 이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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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5,389회 작성일 15-09-22 09:49

본문

개인 저녁 안부편지

 

이병철

 

 

네가 사는 마을에는 은빛 비가 내릴 것 같아

수련 위에서 빗방울은 찬 빛을 뿜겠지

햇살이 젖은 꽃잎을 말릴 때

물방울은 붕붕거리는 데이지 향이 되어

네 반지에 내려앉을 거야

 

물소리가 일어나는 네 자궁 속에는

손끝에 별빛을 틔운 아기가 웅크리고 있겠지

백합과 히아신스 그리고 티아라

그 꽃말들을 아직 기억하는지

네 입술이 뱉는 자음 모서리에 나비가 날아들고

들뜬 아기는 자꾸만 발을 구를 거야

 

가로등불이 이끄는 수레에 저녁이 담기고

감자수프 냄새로 내려앉는 밤하늘,

너는 서툰 이국말로 상인들과 흥정하며

별을 담듯, 쾌활하게 장바구니를 채우겠지

 

네 입술이 엎지른 적포도주가 되어

바게트 빵 같은 어깨로 스며들 때

저 먼 대륙에서는 소년병들이 쓰러지고

벵골호랑이는 질긴 살가죽을 찢으며

피비린내를 음미할 거야

잠깐이라도 소년병들과 벵골호랑이를 생각해줘

그러면 내 더벅머리도 떠오를 테니

 

내가 비 개인 붉은 저녁을 바라볼 때, 너는

오전의 싱그러움 속에서 빨래를 널고 있겠지

저 노을은 네 침실의 할로겐 불빛일 것만 같아

긴 손톱으로 할퀴어놓은 흉터가 따끔거려

까마귀가 날아와 내 살을 쪼아 먹기까지

달빛에 몸을 말리며 여기 서있고 싶어

젖은 몸이 날아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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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서울 출생

한양대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과정

2014시인수첩시 등단

2014작가세계평론 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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