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창작 / 박춘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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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4,100회 작성일 15-09-23 09:53본문
어떤 창작
박춘석
아이들이 나를 그리기 전까지 나는 흰 도화지였다.
여러 색깔의 물감이었다.
아이들이 여러 해, 여러 시간들에 흩어져 있던 나를 불러 모았다.
오랫동안 어디엔가 빼앗겨 있던 눈동자를 불러들였다.
사방 바람조각처럼 흩어져 있던 내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아이들 손길은 열려 있는 출구였다.
생겨나기 시작한 얼굴은, 손은, 발은 끝없이 아이들 손길을 통과하는 중이었다.
아이들 손길은 느리고도 지루한 계절이었다.
엄마 위에 끝없이 많은 엄마를 덧씌워 그렸다.
초벌의 엄마로는 엄마가 되지 않았다.
덧씌워 그릴수록 엄마다워져 갔다.
엄마를 그릴 도화지는 무한했고 색색의 물감도 무한했다.
엄마 안에 수많은 엄마가 수렴되었다.
나는 끝없이 변화하는 그림이었고 변하지 않는 엄마가 되었다.
엄마를 다 탕진하고도 엄마에 갇혀갔다.
아이들이 그려준 얼굴은 내가 가진 얼굴 중에
가장 큰 얼굴이 되었다, 외부를 장식하는.
하늘에 여러 번 따뜻한 해가 그려졌고
엄마는 생장하는 식물처럼 완성되어갔다.
내일은 결혼할 아이를 마지막으로 안아줄 팔이 그려질 차례다.
팔 한 쪽이 마저 그려지면 나는 완벽한 우주가 된다.
이제 아이들은 엄마를 그리지 않는다.
그리다 멈춘 자리에서부터 나 스스로를 그리고 있다.
도화지 속에 둥글게 안으로 휘어진 두 개의 팔이
서로 만나는 지점까지 그려졌다.
경북안동 출생
2002년 《시안》등단
2013년 요산문학상 수상
시집『나는 누구십니까?』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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