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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력 / 마경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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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740회 작성일 18-05-04 14:45

본문

일력日曆

 

     마경덕

 

 

시간의 곳간이다

그런데,

곳간 열쇠도 없는 쥐새끼가 벽에 걸린 시간을 물어 나른다

차곡차곡 쌓인 오늘 내일 모레 글피한 장씩 줄어 이 빠지듯 헐렁해지는데

 

감자 캐는 날, 파종하는 날, 장날, 약 타러 가는 날

 

저녁 늦게 돌아와 파지처럼 부욱 찢어내던 벽에 걸린 하루는

습자지처럼 위태로웠다

그런 날은 치통이 도지고 파스냄새가 허리에 달라붙고 시오리 길에 발등이 부었다

 

알뜰히 꺼내먹은 곳간

동그라미에 갇힌 깨밭 콩밭도 빠져나가고 풀숲에 숨은 뱀딸기도 일력의 붉은 입술도 다 바랬다


할머니가 기록된

파리똥만 남은 여남은 장의 시간

 

초록초록 마늘밭 싹 트는 소리 들리는데,

 

아직도 126일이다

일력은 저곳에서 할머니를 놓쳤다

  

- 시와시학(2017년 여름호)


 mgd.jpg


전남 여수 출생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시집 『신발론』 『글러브 중독자』​ 『사물의 입』​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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