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세계 / 이위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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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2,159회 작성일 18-06-12 11:29본문
사바세계
이위발
너는 손가락 쥐고 태어나 손가락 펴고 죽듯이, 까무룩히 잦아드는 놀을 바라보는, 네 얼굴은
발가벗은 것 같았다. 발가벗고 있으면서 발가벗지 않았다고 말하는, 네 발밑에 땅이 움직이고
있다. 뱀을 밟았는지 흙을 밟았는지 알 수는 없었다. 나뭇가지들이 후벼 파듯이 불쑥불쑥 나타나고,
억센 들풀은 다리를 친친 감아당기고, 날개 달린 곤충들은 응답 없이 날아와 깨물었다. 너는 국물에
빠진 머리카락이 누구 것이냐고 물었다. 네 것이라고, 내 것은 모두 네 것이라 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듯이 물었다. 하늘을 날고 있는 잠자리가 하늘이 어디냐고, 하늘로 가겠다고 떼쓰는 것과 같았다.
소리로 태어나 소리로 살다 소리 없이 죽는다는 것을, 너는 시치미 뗀 채 누-ㄴ을 감았다.
-월간 《시인동네》(2018.6월호) 에서
1959년 경북 영양출생
서울과학기술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고려대학교 대학원 문학예술학과 졸업
1993년 《현대시학》 등단
시집 『어느 모노드라마의 꿈』 『바람이 머물지 않는 집』
산문집 『된장 담그는 시인』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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