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피무늬를 마시다 / 진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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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54회 작성일 18-06-19 09:10본문
호피무늬를 마시다
진혜진
호랑이 잔등이 드러난다 호피무늬를 마신다 잔 속으로 제왕을 가라앉힌 튤립은 호랑이
꼬리를 가졌구나 꼬리를 물면 입술이 흔들린다 이 호피를 꺼내 앉아볼까
나는 케냐를 가 본 적 없어 인왕산 아래를 어슬렁거린다 이력서는 거품을 피하려 하고
나는 거품 속 생두를 큼큼거린다 무지개 얼굴이 한순간 말을 걸고 가는 오후 세 시 라떼아트를
사냥하고 바리스타를 겨냥해본다
궁중의 고요를 저으며 어떤 황제가 커피를 마실 때부터 숭늉은 지워지기 시작했을까 시간을
밀어놓고 그 먼 비운의 향을 맡아본다 커피는 호랑이를 안은 채 백수를 품었다 뜨거움과 거품으로
살겠어 녹아드는 눈빛, 슬슬 꼬리 세워 어둠을 흔들어 볼까 호랑이 입에서 케냐産 원두향이 새어
나온다
숱한 구릉을 내달린 이력이 거품에 뭉쳐있다 협곡을 달려 재기를 꿈꾸는 나의 등으로 햇살이
감긴다 한 잔의 카푸치노 속에 사라진 왕의 슬픈 눈이 떠 있다
-《현대문학》(2016년 4월호)에서
2016년〈경남신문〉신춘문예
2016년〈광주일보〉신춘문예 당선
2016년《시산맥》등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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