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봉골목 / 최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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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85회 작성일 18-06-20 09:51본문
[2015 영주신춘문예 시부문 당선작]
재봉골목
최연수
시접 좁은 집들이 답답한 그림자를 벗어놓은 골목
봄볕이 은밀한 속살까지 훔쳐보자
눈치 빠른 꽃다지가 보도블록 틈으로
한 뼘 여유분을 풀어놓는다
걸음들이 서둘러 시침과 박음질을 오가고
안경 쓴 민들레가 골목입구부터 노란 단추를 채운다
꼬박 달려온 노루발이 숨을 고르는
지퍼 풀린 시간
바짝 죄던 마감이 커피를 뽑아 내리면
잠시 농담 속을 서성이는 슬리퍼들이 붉은 입술을 찍는다
고단한 품이 넘쳐 돌려막기에 바쁜 카드들
골목이 느릿느릿 바람 쐬러 나가면
쪽창을 열어젖힌 채 갖가지 공정에 바쁜 꽃밭,
마감에 채 눈꼽을 떼지 못한 꽃도 있다
뒤집은 오후에 납기일을 접어 넣고 체불을 오버로크해도
자꾸만 뜯어지는 생의 밑단들
한 톨 한 톨 땀방울을 꿰면
낡은 목장갑처럼 올 풀린 하루도 말끔해질까
손이 입을 먹여 살리는 골목
날짜는 지문 닳은 둥근 거울 속에서 풀리고
한겨울 맥문동처럼 쳐져있던 사람들 다시,
하청으로 일어선다
[당선소감]
詩가 곁이 된지 오래입니다.
껴안고 쓰다듬어 키웠지만 늘 이름 하나 붙여주지 못했습니다.
유산流産된 생각들은 어디론가 구름처럼 흘러갔습니다.
수없이 만났던 좌절, 제게 주어진 무게를 습작이란 이름으로 위로했습니다.
문턱에서 다음을 기약하며 돌아서야만 했습니다.
끝이 없는 터널에서 다짐으로 출구를 향해 걸었습니다. 그래서 더욱 기쁘고 감사한 시간입니다.
이제 이름 하나 붙여 세상으로 보냅니다.
기도로 힘을 주신 마경덕 선생님, 숨 가쁜 길에서 손을 맞잡아준 문우님들 고맙습니다.
심지에 불을 붙여주신 심사위원님과 귀한 자리를 마련해준 영주일보에 감사드립니다.
긴 시간 믿고 기다려준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하며 다시, 겸손하고 치열하게 시의 길을 가겠습니다.
2015년<영주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5년《시산맥》등단
제7회 철도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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