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행복 / 김 안
페이지 정보
작성자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901회 작성일 18-08-06 10:13본문
가정의 행복
김 안
어제의 고통과
어제의 수난에도,
우리는 서로가 쌓아놓은 마음의 시체를 바라보며
어리석게 닮겠지.
마음의 폭정들.
우린 공동체와 집단을 구분할 수 있을까,
죄의 바깥에서 쓰인 것과,
죄로 쓰인 것들을. 그 사이에
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응답할 수 없는
이 쓰기들을.
이제 우리에게 남겨진 피안이 있을까.
그러므로 감기에 걸려 온종일 안겨 있는 딸과,
그 신열과 뒤섞이는 작은 방에서,
딸의 이마 위로 쏟아지는 햇빛과
방 바깥으로 흘러넘치는 병과
함께 뒤섞이는 하루의 끝에서,
나는 이 쓰기의 방의 바깥에, 버려진 역사처럼 일렁이는
어제들을 기억해낼 수 있을까,
그런 순간들마다,
어제는 투명하게 무지해지고
고통과 수난은 삿된 에티카를 만들어내겠지, 영영
다른 기억만을 갈망하는 우리처럼,
가정처럼.
딸의 이마에 얹혀 있는 슬픈 손과,
이 무능하고 비겁한 쓰기의 손처럼
- 월간《현대시》2018년 5월호, 제19회현대시작품상 특집 중에서
본명 김명인
1977년 서울 출생
2004년《현대시》로 등단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시집『오빠생각』『미제레레』
추천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