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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투명 호갱님의 멘토스 시전 / 황성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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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profile_image 관리자 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댓글 0건 조회 1,047회 작성일 18-10-25 10:08

본문

불투명 호갱님의 멘토스 시전

 

   황성희

 

  

지우개 하니까 냉큼 지우개를 준다

연필 하니까 대번에 연필을 준다

락스 하니까 수세미까지 얹어 락스를 준다

 

꾸역꾸역 모이는 걸 보니 저건 필시 마지막 급행

수증기도 알고 보면 한 알, 한 알, 다 거기서 거기

토끼나 나비나 구름의 세계에서는 똑같고

소나무와 소나무의 차이는 목격하는 눈동자 속에만 있다

 

구피 같은 것이 죽으면 휴지로 대충 싸면 그만이지만

유리어항이 깨지는 건 어이가 없고 분통이 터지는 일

 

세탁기에 운동화를 넣고 돌리면 뱅글뱅글

돌아가는 것은 물체가 아니라 물체의 시간

이 아니라 탈수를 기다리는 생물의 눈알 한 쌍

 

마치 늘 내 편인 것처럼, 손은 책장을 넘겨주고

설거지 때는 호시탐탐 그릇 밖으로 미끄러지다가

잠이 들면 꿈속에서 꿈밖으로 밤을 쭉쭉 잡아당긴다

어둠의 색이 희미해질 정도로 세계, 팽팽하게,

 

그래봤자 부처님 오신 날은 빨간 날, 문화센터는 휴관

멘토스 자판기는 500원 한 개부터 주입 가능하지만

달콤함도 잠시, 덕분에 입은 충분히 입 다웠으나

 

그래서 집으로 가는 길이 맞나요? 물어보는데

이 길만큼 산전수전 겪기 좋은 길도 없다고

영영 도착하지 못하는 길은 없나요? 물어보는데

여긴 태생부터 미아들이라, 안심해도 좋다고

웬만한 우왕좌왕은 티도 안 나고, 보여도 안 보인다고

 

내가 기어코 잃어버리고 싶은 것은 이 길의 끝인데

당신은 투명인간과 자존심에 대해 말한다, 하긴

진짜 투명일 리는 없으니까, 멘토스를 이렇게 와짝

와짝 씹어대는 중이니까, 불투명 인간의 단물 고인

입속이 궁금하다면 언제든 구경 오시길, 대환영!


 

계간 시와 사상2018년 가을호

 

 
 

200811220058.jpg


 

1972년 경북 안동 출생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 졸업
2005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시집 『엘리스네 집』『4를 지키려는 노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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